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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 하나는 어서 마흔 살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현 상황이 너무도 불안하기에 충분히 나이 들어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여유에 눈을 뜨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시절로부터 10년이 훌쩍 흘렀다. 서른이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현실이라는 파도를 넘나들며 표류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10년 전 안정을 꿈꾸었던 그 아이의 삶이 어떠한지가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글의 전개에 애를 먹고는 한다. 말로는 충분히 제 생각을 피력할 자신이 있는데 펜만 들면 벌벌 떠는 것이다. 그런 이들은 ‘길이가 긴 글이 잘 쓴 글’이라는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문장력도 뛰어나야 한다. 그렇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때로는 짧은 단어 하나로 사람을 울리고 또 웃기는 게 가능키도 하다. 말보다 침묵으로 사람들의 상상을 이끌어내는 장르로는 시가 제일이지 싶다. 저마다 독창적인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 글은 앞서 언급했듯 ‘길이’로 승부를 걸면 어김없이 예선 탈락 감이다. 허나 제약 속에 담긴 무궁무진한 세계를 알고 나면 길이가 전부는 아님을 깨닫게 된다. 누가 어떠한 생각을 하며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글이 시다.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는 그런 시를 다루었다. 저자는 월간 ‘탑 클래스’에 지난 5년간 연재해온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시는 짧으나 해설이 길다. 고개를 갸우뚱 하며 시를 읽은 후 저자의 덧붙임을 통해 마침내 한 편의 시를 나는 완성 짓고야 만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시인이 하고팠던 모양이다, 비로소 시를 향해 다가서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저자의 긴 해설이 정답은 아니라고 감히 말해보고 싶은 이유 모를 반항 심리에 시달린다. 한 번은 저자에 의존적이었으니 조만간 시간을 내어 이번엔 내 멋대로 읽어보리라 다짐도 한다. 해설은 제한 채 오로지 시만을 읽으면서, 그 안에 내 경험, 내 느낌, 내 모든 것을 투영해 보고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각각의 시가 머금고 있는 고유의 생동감을 좀 더 내 것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시름시름 앓는 영혼들의 마음을 쓰다듬는 효과를 시가 지녔다고 믿는 저자의 의도에도 왠지 부합하는 독서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게 힐링(healing) 아니겠는가.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효과는 동일하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리 되지가 않았다. 욕심은 지나치고 현실은 바닥이고, 두 영역 사이의 현격한 차이에 좌절하는 내 모습이 이 책에 담긴 많은 시들로부터 엿보였다. 시 ‘그래도 살아볼 만한 인생’에서는 막힌 하수도를 뚫고는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떠난 심부름길. 비 피하다 병맥주를 마시고 뜬금없이 자스민 한 그루를 사고 나니 아내로부터 받은 4만원은 사라지고 없다던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노임을 받지 못한 설비 기사의 입에서는 거친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아내와 그런 아내의 손을 잡은 고운 눈썹의 아이는 아마도 영원히 시인의 편일 것이다. 삶이 초라할지라도 나와 발 맞추어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게 인생이다. 돈 가져다 주는 것 하나도 ‘아직 멀고 먼’ 그래서 해결치 못하는 삶이라 하여 자책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시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인다’는 고기들의 파닥거림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생존을 향한 그 몸부림을 ‘육탁(肉鐸) 같다’고 표현했다. 제어가 힘들 정도의 우울함이 한 번 시작될 때면, 난 처음에는 일종의 저항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이내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어딘지 모를 바닥에 닿기를 기다린다. 가장 낮은 곳에 이른 후에는 다시금 올라가기 마련이라면서. 안타깝게도 생존의 문제는 그보다 더 독해서, 바닥을 치고 난 후에도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 즉 죽음을 맞닿드리게 된다. 도다리 광어 우럭 등으로 태어나지 않더라도,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아 차리는 일은 가능하다. 아, 앞선 시와는 정반대로 울고파진다.
많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데도 굳이 이 둘을 언급한 까닭은 세상을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현격히 다른 것이 인간이요, 모두가 다른 가치관에 입각해 세상을 그려내고 있음을 말하고 팠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아마도 시인들과는 또 다른 당신만의 시선이 그리고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 눈물로 웃음으로 시를 쓰지 못하면 또 어떤가.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당신은 당신이 구축한 그 세계를 지켜낼 수 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방황하는 서른’을 위로하는 치유의 말들
여기 8시까지 출근해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밖을 보니 하늘도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흰 달이 떠 있다. 열심히 또 제대로 뭔가 잘 해내고 싶었지만, 내 신세는 오늘도 어김없이 치이는 바닥의 돌 같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위로의 말은 이제 20대만 ‘청춘’이라 이른다. 서른도 방황하고 고민하고 상처받는다. 지금은 청춘도 아니고 중년도 아닌 서른의 시절은 누구에게 위로 받아야 좋을까?
「대추 한 알」 「마지막 사랑」 등의 시로 유명한 장석주 시인이 지난 5년간 「탑 클래스」에 연재한 칼럼을 엮었다.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 는 지친 마음과 영혼을 안아주는 ‘힐링’을 주제로 한 시 에세이로, 사랑에 대한 기쁨과 슬픔, 이미 저버린 하루에 대한 아쉬움, 못다 한 것들에 대한 후회처럼 우리 마음에 까끌하게 남은 감정을 치유해주는 말들이 담겼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구로 유명한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부터, 「시간은 사람을 먹고 자란다」 「가을」 등 깊은 울림이 있는 시를 다수 실어, 우리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여기에 장석주 시인의 인간적이고도 배려 깊은 글이 시가 전하는 말에 농도를 더한다. 또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를 쓴 곽효정 작가의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어 시에서 얻은 감동을 더 짙게 음미할 수 있다.
서문
Ⅰ. 외롬과 시림이, 식초보다 아프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수선화에게(정호승)
사랑은 착불로 온다 : 꽃 택배(박후기)
나는 이별을 하고, 빨래를 하고, 낮잠을 잔다 : 이별의 능력(김행숙)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 반가사유(류근)
잃어버린 ‘나’에게로의 초대 : 고요로의 초대(조정권)
가장 아름다운 사랑도 약간은 쓰다 :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여자들은, 이미, 젊지 않다 : 고통을 발명하다(김소연)
마음이 한 자리에 못 앉아있을 때 : 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
사랑을 잃었네 : 빈집(기형도)
이미 울다 간 바 있는 봄 : 능가사 벚꽃 잎(황학주)
사랑_ 그 지옥으로, 웃으며, 자발적으로 : 전갈(류인서)
외롬과 시림이, 식초보다 아프다 : 강(황인숙)
Ⅱ. 꿈이 꿈을 떠나고,
노래가 노래를 잃었을 때
오늘 나는, 새로워지고 싶다 : 오늘 나는(심보선)
한없이 서 있는 뒷모습에게 : 뒷모습(이병률)
현명하게 기차를 타고 떠나는 방법 : 목요일마다 신선한 달걀이 배달되고(이근화)
아직도 먼 봄, 이미 아프다 : 방을 깨다(장석남)
청춘의 망명정부가 있다면, : 무가당 담배 클럽에서의 술고래 낚시(박정대)
청년은 울지 않는다, 다만 청년 안에 소년이 운다 :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유희경)
나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조용미)
시간은 사람을 먹고 자란다 : 시간은 사람을 먹고 자란다(정진혁)
해가 많이 짧아졌다 : 가을(김종길)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들 : 거울 속 일요일(이혜미)
꿈이 꿈을 떠나고, 노래가 노래를 잃었을 때 : 무인도(김요일)
Ⅲ. 진부하고 공소한, 그럼에도 현실
말랑말랑하게 산다는 것 1 : 긍정적인 밥(함민복)
말랑말랑하게 산다는 것 2 : 밀가루 반죽(한미영)
그래도 살아볼 만한 인생 :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박철)
오늘, 우울하거나 명랑하거나 : 정오의 희망곡(이장욱)
내 삶이 비루하고 구질구질하다 느낄 때 : 별을 보며(이성선)
아침이었는데 벌써 저녁이다 : 어떤 하루(강기원)
어느 신명나는 날 : 시골길 또는 술통(송수권)
내 안의 집착에 진절머리가 나면 : 너와집 한 채(김명인)
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 장마(김사인)
살아있음의 기쁜 슬픔으로 : 나 떠난 후에도(문정희)
훠얼훨 사르며 시간 마루를 넘어서 : 메주(정재분)
한 생을 산다는 것은 : 운동장을 가로질러 간다는 것은(유홍준)
닳고 닳음에도 다 사연이 있더라 : 머나먼 돌멩이(이덕규)
진부하고 공소한, 그럼에도 현실 : 꽃잎 날개(김영승)
Ⅳ.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 육탁(배한봉)
흘러간 세월은, 구체적이다 : 잘 익은 사과(김혜순)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청춘에게 : 연가9(마종기)
씹히거나, 씹힘을 당하거나 : 껌(김기택)
나를 버린 당신, 당신을 버린 나 : 겹(김경미)
그 많던 청춘들은 다 어디서 떠돌고 있을까 : 배꽃은 배 속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이문재)
어머니는 동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멍(박형준)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 밀물(정끝별)
풀은 바람보다 빨리 일어난다 : 풀(김수영)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이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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