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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을 읽다

himdols 2024. 2. 11. 11:10


1. 서지사항- 서명 ; 자본론을 읽다 :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공부하는 이유- 저자 : 양자오 / 사회학교수- 역자 : 김태성 / 사회학자- 출판사 : 도서출판 유유- 출판일 : 2014년 10월 4일 2. 리뷰 칼 맑스의 자본론. 그 유명한 서적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서적을 제대로 읽어본 이는 몇이나 될까. ‘빨갱이’라고 불리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반공의 시대를 지나간 지 한참,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도 색깔론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조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복지, 부의 재분배 등의 문제에 접근하면 여지없이 ‘빨갱이’ 소리를 듣는 세상. 그렇다면 ‘빨갱이’의 우두머리 격이라 할 수 있는 칼 맑스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과연 ‘빨갱이’를 규정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자본론 읽기의 가장 좋은 참고서’라고 평한 역자의 추천사는 매우 정확했다. 대만 학자 양자오는 이 책을 통해 복잡하고 방대한 자본론의 주요 개념과 이론을 매우 성실하게, 평이하게 해설해내고 있다. 본디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경제 교과서로 삼을 목적으로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마르크스에게는 ‘자본론’이 매우 평이한 서술이라 생각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경제 논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기초적인 용어의 개념부터가 이미 다르기 때문에 ‘자본론’을 독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양자오의 해설은 매우 훌륭하다. 우리가 아는 경제 논리와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경제 논리의 차이를 먼저 해설하면서 같은 용어, 다른 의미의 개념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자본’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을 살펴보자.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자체적인 작동 논리를 갖추고 있으며, 그 움직임은 자본을 쥐고 있는 자본가마저도 주관적인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가를 통제한다. 자본은 인위적인 것이고 자본가가 투자를 통해 창출한 것이지만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오히려 자본가의 행위를 결정하고 자본가를 조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물려받아 더욱 확장하고 변화시킨 ‘소외’의 개념이다. ... 마르크스는 한 가지 명확한 판단 기준에 따라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다름 아닌 인간의 ‘진실성’이다. 인간은 완전히 ‘소외’당하지 않고 자기의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믿음이었다.” - 본문 중에서 우리에게 ‘자본’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 혹은 ₩ 기호가 적힌, 금화가 든 갈색의 부대 자루를 연상하곤 한다. 우리에게 있어 ‘자본’이란 일반 소비자가 아닌 기업가들이 회사를 굴리는 데 사용하는 조금 큰 단위의 돈 무더기를 의미한다. 완전한 객체로서의 ‘자본’인 셈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생각한 ‘자본’은 단지 물질적인 객체 그 이상을 의미한다. 애덤 스미스의 이론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자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해 왔다면, 마르크스는 ‘자본’ 그 자체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인간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경제 논리는 철저히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대표적인 것이 고등학교 경제학 시간에 배우는 ‘수요-공급’ 곡선이다. ‘자본’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 가치가 어떻게 교환, 변화되는가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실제 이 ‘자본’을 움직이는 사람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이런 이상적인 상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인간은 철저히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를 하는 기계로써 설정되는 셈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경제 논리는 철저히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경제 논리의 근간은 ‘노동자’와, 그들이 노동을 통해 만들어 내는 ‘노동 가치’이다. 인간이 자본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인간의 ‘진실성’인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일과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매우 낭만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지 생활의 수단이 되거나 생활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생산 수단이 남의 손에 장악되면 노동자는 임금을 받는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노동으로 만든 제품에 애정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나아가 노동 자체에도 애정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노동은 그저 그가 맡아야 하는 직책이 된다. 이리하여 노동자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깨어있는 시간의 70퍼센트 이상을 피압박 상태에서 지내게 되고 기껏해야 30퍼센트의 시간 동안만 진정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 본문 중에서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에게 묻는다. 여러분들은 이 문장에 돌을 던질 수 있겠냐고. 사실 현대의 사회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피고용인의 마음을 이만큼 이해해준 경제 이론은 없었다. 직장인은 누구나 마음에 ‘사표’를 품고 산다고 한다. 모 웹툰에서 ‘언니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해?’라는 동생의 물음에 언니는 주저 없이 ‘퇴사할까? 언제 퇴사하지? 퇴사하고 싶다. 퇴사하면 뭐하지? 백수 되고 싶다.’ 퇴사의 꿈을 쏟아낸다. 그렇다. 우리에게 퇴사는 ‘꿈’인 것이다. 늘 퇴사를 ‘꿈’꾸며 사는 직장인의 삶에 있어 직장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마르크스는 이것이 우리의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더 높은 자리를, 더 높은 성과를 바라지 않아서, 패배주의에 젖어 ‘노오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버린 ‘자본’에 종식된 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가. 우리는 더 이상 ‘사표’를 품고 사는 우리 자신에게 환멸과 패배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그저 현실 도피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 봐야 사표를 품고 사는 우리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 것을. 그래서 어쩌자고? 이 사회를 뒤엎기라도 하자고? 양자오는 우리가 지금 시대에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르크스를 읽는 이유는 우리가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가 승리해 주류가 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는 홀로 거대하여, 그 오만한 논리가 거의 극단까지 발전했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그와 전혀 다른 관심으로 우리에게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 속에 철저하게 함몰되지 말 것을, 이를 필연적이고 유일한 선택으로 보지 말 것을 일깨운다. 오늘날 마르크스를 읽는 것은 모두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의 신도가 되어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로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를 때려 부수려는 몽상을 품으라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나의 가능한 선택지로 보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의 오만한 독선에서 일어나는 편파와 사악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최소한 우리는 모두가 ‘사표’를 품고 살아가는 이 현실이 모순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그 대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 그저 자본주의의 폐해 속에 억눌려 그것이 마치 우리의 잘못인 양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또 다른 저서 ‘공산주의 선언’의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우리가 단결해야 하는 이유는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시도는 이미 의미 없는 실패로 돌아갔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우리가 단결해야 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최소한 매일 같이 ‘사표’를 품고 회사에 가는 사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우리 ‘노동자’에게 주어질 수 있는, ‘노동자’가 행복한 삶을,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론 안에서 꿈꾸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자본론을 통해 문제 인식은 할 수 있지만, 그 해결책은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어느 경제학 책을 뒤져보아도 완전한 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자본론의 한계점은 명확하다. 자본론이 제시한 자본주의의 문제는 단지 자본주의의 전복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본주의 안에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해나가야 할 것인가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훨씬 중요하다. 너무 이른 시대에 태어나 자본주의의 태동과 확장만을 목도할 수 밖에 없었던 마르크스가 아쉬운 이유다.
타이완의 인문학자 양자오楊照는 서양고전강의 세 번째 책 자본론을 읽다 . 저자는 마르크스의 철학적 배경인 헤겔 철학을 설명하는 데에서 서두를 시작하지만 자본과 자본가, 자본주의, 잉여 가치, 노동과 노동자처럼 자본론 을 읽고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배경이 되는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방대한 계획을 짜고 글을 쓴 마르크스가 결국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한 개념들이 레닌, 카우츠키에서 월러스틴에 이르기까지 후대에서 어떤 이론으로 보충되고 해석되었는지도 함께 언급한다.

저자 서문 오랜 세월 무시된 정의로운 사유
거듭 파고들 가치가 있는 지식의 보고

1. 형식과 내용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진실’을 추구하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국경을 넘는 자본
자본의 강대한 욕망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존재에서 생성으로
‘정립-반정립-종합’의 변증법
변증법적 순환을 따라 위로 발전하는 역사
황당하고 어리석은 ‘소외’
형식과 내용이 완전하게 합치하는 ‘실질’로의 회귀

2. ‘실낙원’의 속죄의 길을 다시 걷다
장인에서 노동자, 점포에서 공장으로
선동가인가 사상의 거인인가
‘마르크스는 하나인데 서술은 제각각’
정치경제적 관점 속의 철학적 관심
가격의 전제: 가치
교환과 가격은 ‘소외’를 유발한다
물질숭배 충동 속의 ‘실낙원’

3. 왜곡과 소외를 지적한 ‘과학적 유물론’
자본론 의 핵심: 분배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두가 누려야 하는 권리
공산당 독재가 빚은 오해
가격이 가치를 대신하면서 일어난 현상
‘과학적 유물론’의 가치 공식
‘교환 가치’ vs ‘사용 가치’
교환 행위의 왜곡과 소외
비정상적인 교환 관계에서 만들어진 ‘잉여 가치’
노동과 자본 쌍방의 불평등 교환
시대의 진정한 주인: 노동자

4. 계급 의식의 확립과 착취로부터의 탈피
레닌과 월러스틴의 전진
‘마르크스주의자’의 도움으로 사상의 지도를 채우다
시장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 vs 마르크스 경제학의 ‘착취’
공정한 ‘보이지 않는 손’ vs 인위적인 ‘조작’
모든 가치의 근원: 노동
계급 의식의 확립을 통한 착취로부터의 탈피
자본론 의 맹점: ‘자본가 노동자’
노동자 계급만의 공평하고 정의로운 이념

5. ‘상부 구조’의 구속을 부수다
‘임금 노동’에 점거된 자유 생활
끊임없이 자기를 확대하는 자본의 본질
마르크스 사상의 실질적인 역할
수단과 목적이 끊임없이 전도되며 일어나는 ‘소외’
거치 혹은 저축이 가능한 화폐가 자본에 출구를 찾아 주다
자본가의 생산 수단 독점으로 일어난 계급의 분화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
‘상부 구조’가 강요하는 가치관
소수 엘리트의 조작 수단으로 전락한 국가
노동자 편에 서는 쪽을 선택하다
지식인의 임무: 사유와 비판
마르크스 사상이 후세에 미친 실질적인 영향
원시 마르크스주의 철학 사유로의 회귀

역자 후기 지금 이 땅에서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
더 읽어 볼 책
마르크스의 생애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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