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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himdols 2024. 2. 8. 01:16


권여선 작가의 처녀치마를 읽었습니다. 사실 국내문학은 잘 안 보는 편인데 이 작품은 뭔가 홀린듯이 결제했네요. 소개에 단편집이라는 말이 없었던 것 같아서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단편집이어서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내용을 보니 뭔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고 오묘해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 꽤나 현실적인 내용들이라서 읽기 힘든 부분도 있었는데 그게 작품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와 나의 임포텐스,
우리 앞에 놓인 은유(들)

각각의 단편이 가진 정체성과 매력은 남다르다. 「트라우마」는 왜곡된 채로 반복-상연되고 있는 과거로부터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한때 주인공 尹과 함께 사회에 저항하던 그의 ‘동지’들은 이제 가장 지질한 형태의 저항만을 답습하고, 그런 저항의 목표 지점은 ‘우―토피아’(라는 게이바)로 상징되는 ‘이곳에는 없는’ 야릇한 상상의 장소일 뿐이다. 「그것은 아니다」가 보여주는 것 또한 문화/정치운동에 투신한 인물이 어떻게 고시원 속에 틀어박혀 죽은 과거(의 연인)를 그리워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난폭한 서사다.

일찍이 그렇게 배웠다.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한두 번의 연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만물은 유전한다고, 모든 것은 흔적 없이 움직이다 사라질 뿐이라고. 그녀는 규와 그에게 시선을 못 느끼면 배우로서 임포라고 가르쳤다. 역사의 시선을 외면하면 역적이라 가르쳤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만의 시간들을 살고 있다. 그들도 유전한 것이다. 그녀를 되살릴 수 있다 해도 그는 단 일 초의 졸음도 참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 손을 털고 훌훌 떠난 그녀도 마찬가지. 그건 그들이 저 지독한 호텔방에서 학습한 것. 무너지면서 배운 것은 절대 잊지 못한다. 그들이 공유하는 배움은 거기까지. 거기까지.(299쪽)

그리고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연극의 형태(이자 역사의 시선 이라는 유물론적 테제)로 나타나는 현실의 재생산이다. 그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언제나 타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역적 이 되어 떠돌고, 무너지면서 배운 것 에 관한 잔인하리만치 적확한 체험은 사실로 탈바꿈한다. 작가의 이 같은 세계인식은 결국 나와 네가 어떤 식으로든 ‘불능’한 상태, 즉 누구나 성적-사회적 임포텐스를 경험하게 되는 지금-여기의 절망적 상태를 대변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로부터) 해체되고 지연되어 우리 앞에 놓인, 이 사회의 부분이자 개체일 뿐인 자신을 바라보는 일과 겹쳐진다. 이처럼 우리가 사회 속에 ‘기입된’ 자신을 일종의 수사, 즉 사회적 경험인 동시에 반사회적 체험(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만의 시간들 )인 일종의 은유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다시 ‘해석해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이 은유의 법칙은 어디서부터 탄생하게 된 것인가? 바로 이러한 물음들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회귀의 제스처는, 과거의 ‘(대중)운동’이 내재했던 실패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처녀치마
트라우마
12월 31일
두리번거린다
수업 시대
불멸
나쁜음자리표
그것은 아니다

해설 스토아주의자의 치유법_이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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