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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천사

himdols 2024. 1. 24. 00:54


허연의 시, 칠월 을 사무치게 사랑한다. 그 시가 실려있는 시집은 아니지만 왠지 7월이 가기 전에 그의 시집을 꺼내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여전히 여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인. 허연의 시는 단도직입적이다. 이를테면 패배 와 같은 시.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서울의 집값을 묻는 배낭여행가를 통해 역시 초월은 불가능하다고 묻는 그런 시는 날 것의 감정 그대로여서 서럽다. 또한 허연의 시는 선언과도 같다. 나의 마다가스카르 3 . 폭우로 동네 하천이 넘쳤을 때, 집으로 돌아가 수동 타자기를 들고 나왔다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곧 자신의 이야기여서, 그래서 그에게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날의 폭우와 타자기로부터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선언은 지나가버린 후회를 초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허연의 시는 시간을 무색하게 만든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 그렇고, 사랑詩 1 이 그렇고, 얼음의 온도 가 그렇다. 수백만 년, 천 년. 그 모든 시간은 곧 한순간처럼 반복되어온 것이며, 그걸 깨뜨리는 게 사랑이라고 그는 노래한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체념은 지난 여름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시 천천히 읽고 싶은 시집이었다. 다만, 아쉬운 건 『오십 미터』에 비해 해설이 빈약하다는 점. 『오십 미터』를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낀 감정이 해설에 의해 정리되었다면, 오히려 이번 해설은 더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시단에 나와 1995년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로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한다는 호평을 받았던 시인 허연의 세 번째 시집. 삶의 허망하고 무기력한 면면을 담담히 응시하며, 완벽한 부정성의 세계를 증언함으로써 온전한 긍정의 가능성을 찾아 나간다. 우울한 도시의 아름답지 않은 천사를 그려내는 그의 거침없고 솔직한 말투가 읽는 이의 마음속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일상을 살아가는 다른 생들을 애달프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시선에서만 허연 시의 화자는 천사를 상상한다. 천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천사를 가장 닮지 않는 모습으로 올 것이라는 그 안타까운 상상이, 어쩐지 위로가 된다. 허연은 완벽한 희망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천국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 실망과 절망이라는 희망의 흠집을 통해서 희망을기억하고 증언해줄 자들은 있다고 기대한다.

내가 원하는 천사 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세월을 참아내는 한 인간의 솔직한 이야기다.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없고, 나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그저 흠집투성이인 생의 시간들. 그 안에는 상처받았기 때문에 빛나고 이미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허연의 공화국은 사라져가는 것으로 가득 차 더딘 세월에 실려가겠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노래를 부를 것이고, 또다시 천사를 찾아낼 것이다.


마지막 무개화차
새들이 북회귀선을 날아간다
삽화
나의 마다가스카르 1
P는 내일 태어나지 않는다
신전에 날이 저문다
몰락의 아름다움
늦은 부고 2
후회에 대해 적다
나의 마다가스카르 3
안달루시아의 무희
여가수
미이라 2
건기 1
다큐멘터리를 보다 2
내가 원하는 천사
빙하의 연대기
빗살무늬토기에서 흐르는 눈물
증기, 혹은 죽음
어떤 방의 전설
자라지 않는 나무
낯선 막차
바람의 배경
고양이와 별똥
열반의 놀이동산
건기 2
아나키스트
까마귀의 영역
역류성 식도염
신전 3
소립자 2
좌표 평면
전철은 하수다
군중
어떤 아름다움
사선의 빛
폐광
로맨틱 홀리데이
지독한 슬픔
소혹성의 나날들 2
둥지에서 떨어진 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12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Cold Case
지하 도시
지리멸렬
아침 신파
천국은 없다
패배
시정잡배의 사랑
편지
무념무상 2
뭉크의 돼지
미이라
덧칠
무념무상 1
계급의 목적
사랑시 1
산맥, 시호테알렌
나의 마다가스카르 2
얼음의 온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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